러시아연구소장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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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변현태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인사말
러시아연구소 뉴스레터를 준비하다 작년 여름에 현지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프스코프에 같이 갔던 학생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연구소장 인사말로 어떤 걸 준비할까 고민하던 참에 작년 프스코프에 머물면서 했던 생각들을 공유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차로 4시간 정도, 서남쪽으로 달려 도착한 프스코프는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입니다.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러시아의 대도시에서만 살아봤던 저로서는 프스코프에서의 생활은 여러 가지로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의 다분히 관료주의적인 행정 절차에 시달려봤던 경험이 있었던 저로서는 어학연수의 장을 마련해주었던 프스코프 국립대학교의 행정 직원들이나 도시 시민들의 친절함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프스코프 체류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 제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것은 프스코프 시 중앙에 위치한 레닌 광장의 레닌 기념비와 성트로이차 성당이었습니다. 사실 러시아의 주요 도시 중에 레닌가(레닌스키 프로스펙트)나 레닌 광장이 없는 곳은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흥미로웠던 것은 프스코프의 주성당인 성트로이차 성당과 레닌 기념비가 말 그대로 바로 옆에서 공존하고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레닌동상
지금도 주성당인 성트로이차 사원 바로 옆에 레닌 광장, 그리고 레닌 동상이 위치해 있는 것이 제게는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프스코프에 도착한 다음 날, 프스코프 대학에서 마련해주었던 프스코프 관광 프로그램 중에서 1900년 레닌이 프스코프에 묵었던 집을 들렀던 탓이겠지요. 1900년 유형에서 풀려난 레닌이 프스코프에 머물면서 러시아 공산당의 기관지였던 「이스크라지(誌)」를 기획했던 그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더군요. 레닌이 머물렀던 곳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던 것이야 ‘소비에트 정서’로 이해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가 지금 어느 나라보다도 활발하게 진행 중인 러시아의 한 도시에서, 그곳이 여전히 ‘관광 상품’으로 기능하는 것도 기묘하고, 굳이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이 박물관을 견학시켜준 프스코프 대학의 ‘의도’는 뭘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소련이 아닌 러시아공화국 시민들에게 현재 레닌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그러고 보니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사원과 레닌 묘의 결합도 다시 읽혀지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종교와 혁명’ 이 두 키워드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합니다.
내년, 2017년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입니다. 아마도 이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러저러한 학회며 국제학술대회가 지금 기획되고 있겠지요. 특히 소위 ‘소비에트학(Sovietology)’이 러시아 문화연구의 대세가 되고 있는 지금이라면 소비에트의 출발이었던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대한 이러저러한 담론들이 제시될 듯도 합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레닌과 레닌주의에 대한 담론이 포함되겠지요. 서울대학교를 포함한 한국의 대학 환경이 워낙 급박하게 변하는지라 이모저모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힘든 여건이지만, 서울대학교 러시아연구소도 이제 내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혜안을 기대합니다.
레닌광장
  • 2016년 봄, 소장 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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