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연구소장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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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변현태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인사말
지난 토요일(10월 17일) 한국러시아문학회, 한국노어노문학회, 한국슬라브어학회,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등 4개 학회와 한러대화, 러시아-유라시아 문화코드 사전 사업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공동학술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한러수교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겸하기도 했던 이 공동학술대회의 마지막은 ‘러시아 관련 학회 발전방안’에 대한 4개 학회의 학회장들의 발제와 이를 둘러싼 토론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토론은 앞서 언급한 ‘한러수교 25주년’을 기념하면서 지난 25년을 포함한, 한국에서 러시아학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한번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한국에서의 러시아학의 발전과 현황에 대한 4개 학회의 학회장들의 인식에는 차이가 없지 않았습니다. 이 차이에 따라 각각의 학회장들은 조금씩 차이가 나는 발전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발전과 현황에 대한 판단이나 발전방안에서 공통점도 발견되었습니다. 우선 지난 25년 동안 한국의 러시아학이 양적·질적으로 발전했다는 인식이 그것입니다. 이 인식에 저도 동의합니다. 조금 더 확장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한러수교 25주년을 맞아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경제적, 외교적,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정치적으로도 확장되어 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러시아의 이러저러한 관계들의 확장과 함께 한국에서의 러시아학은 분명 발전해왔고 발전하고 있는 중으로 보입니다.
다른 한편 러시아학 관련 4개 학회의 학회장들 모두 한국에서의 러시아학의 발전 전망이 현재로서 밝지만은 않다는 점에도 공통의 인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다양했습니다. 한편으로 점차 악화되어가는 대학사회의 물리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주지하듯이 지난 몇 년간 시장의 논리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한국 대학들의 구조조정은 한국에서 소수 학문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학의 발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을 벗어나 국제관계로 눈을 돌려보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악무한으로 치닫고 있는,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관계도 한국의 러시아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합니다. 한국을 둘러싼 4대 외교관계, 즉 미일중러의 관계에서 한국이 가장 신경을 ‘덜 쓰는’ 관계가 러시아와의 외교라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이러한 국제관계도 러시아학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달갑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학을 하는 주체, 즉 ‘우리’에 대한 발본적인 반성이 요청되기도 했습니다. 소수학문이라는 지위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어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전문가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고양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러시아학을 대중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일반인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것은 아닌가, 등과 같은 반성이 제출되었습니다.
물론 더 깊게 살펴볼 지점들이 많은 이러한 상황이 아마도 대략적으로 우리 러시아연구소를 비롯한 러시아학 관련자들이 처한 상황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전망하고 그에 따라 미래 전략을 수립해야하는 ‘뱀의 지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게는 그러한 ‘뱀의 지혜’가 없습니다.
일단은 러시아연구소가 지속적으로 해왔던 일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집담회, 학술대회 등을 조직하고 보다 활발한 학문적인 교류를 해야겠지요. 당장 12월에 일본의 홋카이도대학 슬라브연구센터와의 공동심포지엄을 성공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11월에 발간될 『러시아 연구를 발행할 준비도 차근차근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내실을 기하는 것이라면 외연을 확장하는 일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연구재단의 사업이든 혹은 그 외의 다른 사업이든 러시아연구소가 외부와 함께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야 할 듯합니다.
앞서 언급한 공동학술대회에서 토론된 ‘러시아 관련 학회 발전방안’의 구체적인 안들은 통일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나이브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모든 학회장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가야한다는 것, 현재의 조건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같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 그것입니다. 비록 나이브하지만, 러시아연구소가 발전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 역시 아마도 ‘같이 가기’가 되지 않을까요.
  • 2015년 가을, 소장 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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