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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유형의 역사: 격리 형벌, 계몽, 자유

한림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연구원 이경완

한정숙 교수의 『시베리아 유형의 역사: 격리 형벌, 계몽, 자유』(민음사, 2017)는 시베리아 유형의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 균형잡힌 역사적인 성찰, 그리고 개인의 정서적인 감상이 적절히 어우러진 점에서 역사서와 문학 에세이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물론 이 국가들의 문화예술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저자는 균형잡히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로 17~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유형사를 서술하면서, 그 유형 제도의 정치 · 사회 · 문화적인 기능, 유형의 종류, 유형수들의 일상 생활, 정치범들의 계몽활동과 그것이 미친 영향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전반부에서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유형 정책의 추진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서구와 러시아 연구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비교·분석하면서 보다 균형잡힌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저자는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유형 제도를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로의 유형 제도와 중국 및 조선의 유형 제도와 비교함으로써 이 국가들의 유형 제도의 공통점과 시베리아 유형 제도의 특수성을 입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학적인 비교·분석을 통해서 한정숙 교수는 300년 이상 추진된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유형 정책이 시베리아를 유럽부 러시아 지역을 위한 자원 공급지와 모순의 방출구로 삼기 위한 수단으로 추진되었으나 전반적으로 기대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하였다고 밝혔다. 유럽부 러시아 주민들과 유럽인들을 위한 모피와 광물자원 공급은 일시적으로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나 그로 인해 이 지역의 생태계와 토착인들의 생활기반은 파괴되었고, 시베리아 유형 제도로 기대했던 러시아 제국의 안정과 시베리아의 개발 및 인구증가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맺음말에서 시베리아 유형 제도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문장으로 매듭짓는다. “한 사회가 자신의 모순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 모순을 안고 자기 안에서 정직하게 대결해야 한다.”(266-267쪽)
유형 제도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인 분석과 종합적인 평가와 더불어 저자는 대표적인 시베리아 유형수들의 유형 과정과 유형지에서의 삶, 그들이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개발과 문화 증진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 그리고 바쿠닌과 트로츠키 등 일부 유형수들의 탈출 과정을 역사적인 자료를 근거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이들에 대한 다양한 문학작품, 회화, 민요 등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평가와 정서적인 감흥을 문학적으로도 제시해준다. 그 대표적인 유형수들의 명단에는 구교도 사제 아바쿰, 우크라이나 지도자들과 민족주의자들, 라디시체프, 제카브리스트들, 폴란드 민족주의자들, 도스토옙스키, 바쿠닌, 레닌과 트로츠키 등이 있으며, 이들에 대한 저자의 역사적인 서술과 생생하고도 감동적인 묘사는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과 같은 정치범 유형수들의 글, 그들의 유형 생활에 대한 외부인들의 다양한 장르의 기록, 시베리아극동에 전해 내려오는 유형수에 대한 구슬픈 민요 등을 일부나마 직접 접하면서 독자들은 그들의 삶에 대한 생생한 그림을 그리게 되고 깊은 연민과 감동을 갖게 될 것이다.
서평의 필자는 이 책을 통해 한편으로는 러시아제국 시대에 유럽부 러시아에서 형성된 시베리아에 대한 식민주의적인 인식이 오늘날에도 러시아인들에게 집단적 무의식으로 남아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반면에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 정치범들의 고난과 헌신적인 삶, 러시아인들의 신앙심과 인간적인 연민을 보여주는 적선의 문화, 도스토옙스키처럼 시베리아에서 영적인 각성을 얻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유형수들이 보여주는 고난 속의 영적인 성장과 자유의 원칙 등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베리아 개발과 유형의 역사가 빚어낸 전반적인 폐해는 반성하고 부분적인 소중한 유산은 발전시키는 작업이 오늘날의 러시아에 주어진 과제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더불어 어느 사회에나 자신의 모순을 방출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을 만들어서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켜 온 역사적 경험이 있음을 깨닫고, 우리 사회에도 우리의 ‘시베리아 유형지’는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러시아나 우리나 자신의 모순의 방출구를 만들지 않고 그 모순에 직면해야 함을 깨닫고, 그런 성숙한 인식으로 시베리아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지역개발을 목표로 협력하게 되기를 바란다.
  • 제목 : 시베리아 유형의 역사: 격리 형벌, 계몽, 자유
    저자 : 한정숙
    출간년도 : 2017
    출판사 : 민음사
    쪽수: 327쪽
    ISBN 9788937485091
    (8937485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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