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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중모 전 주벨라루스 대사 초청강연회 벨라루스 국가건설과 국가정체성

양중모 전 주벨라루스 대사 초청강연회 사진
서울대학교 러시아연구소는 지난 10월 31일 신양인문학술관에서 양중모 전 주벨라루스 대사를 모시고 ‘벨라루스 국가건설과 국가정체성’을 주제로 초청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본 강연에서 양중모 대사는 최근 2016년까지 벨라루스에 재임한 경험을 토대로 벨라루스의 역사 전반과 함께, 현재 벨라루스의 정치·사회·국제관계 동향을 명료하고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양중모 대사는 우리에게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벨라루스 출신 명사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하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테니스 선수 아자렌카, 전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 화가 마르크 샤갈 등이 그들이다. 벨라루스가 지역상 가장 많은 부분이 인접한 국가는 러시아이지만, 벨라루스는 내륙 국가로서 러시아 외에 우크라이나,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도 인접해 있다. 현재 전체 인구는 930만으로 스웨덴이나 체코와 비슷하고, 덴마크나 핀란드보다는 많다.
강연자는 이어서 벨라루스의 역사를 일별하였다. 벨라루스의 시조에 대해서는 고대 루시 민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1940년 소련의 지배와 함께 도입된 견해로, 발트족과 슬라브족의 혼합이라는 ‘발트 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벨라루스의 최초의 국체를 폴로츠크 공국으로 본다. 폴로츠크 공국 이후 벨라루스의 문화와 민족정체성을 확립한 곳은 현재 벨라루스를 포함한 그 일대를 차지했던 리투아니아 공국으로 13세기~16세기 때이다. 1385년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폴란드와 함께 혼인을 통해 혈맹을 맺으며 독자적인 세력을 확장, 유지한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16세기 들어 강대국이었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주위 강대국들의 성장, 그리고 그들과의 외교관계에서 패권을 잡는데 실패하면서 쇠퇴하게 되고, 리투아니아 공국에서 행정·문화 영역의 공식 언어로 쓰이던 고대 벨라루스어의 입지가 약해진다. 더불어 1599년 중부유럽에서 ‘연합교회’가 탄생한 뒤에 강압적인 폴란드화 정책이 시행되자 이에 맞서 코자크의 반란이 일어났고, 이후 18세기까지 벨라루스는 폴란드, 스웨덴, 러시아 등 여러 유럽 국가세력이 각축전을 벌이는 장소로 전락하였다. 1772년 리투아니아의 ‘삼국 분할’ 이후, 벨라루스 지역은 확실하게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이후 20세기 말까지 벨라루스는 소련의 한 연방으로 존재하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에 비로소 독립국가로 분리되었다.
다음으로 강연자는 현 벨라루스 대통령 루카셴코 체제의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1991년 소련 붕괴 직후 벨라루스의 독립을 주도해 왔던 ‘벨라루스인민전선’은 리투아니아 공국 계승의식을 보이면서 벨라루스 전통문화를 복원하려는 한편, 친서방정책을 추구하며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시도하였다. 1994년 루카셴코는 부패 기득권에 맞서는 개혁적 인물로 인정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그는 러시아어를 공식언어로 인정하는 등 친러시아 노선을 걷는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민영화를 거부하고 소련 시절과 유사한 국가개입 중심 계획경제 체제를 채택하였다. 루카셴코 정권은 러시아와의 결탁, 그에 따른 러시아로부터의 온갖 경제적 특혜와 이점들, 구체적으로 원유 및 가스의 저렴한 공급, 관세 및 금융상의 특혜, 일자리를 통한 교류 등을 바탕으로 20년 이상에 걸친 장기집권 독재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강연자는 루카셴코 체제의 미래에 대하여 대내적 측면과 대외적 측면을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망하였다. 일단 대내적으로 루카셴코 체제는 국민의 지지가 결코 예전같지는 않지만 야당이 발전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언론을 독점하고 있고, 반체제세력이 정치적 힘을 규합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부로부터 체제가 급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제는 대외적 환경이다. 2000년 옐친 정부 때 러시아와의 통합까지 추진해 온 루카셴코 정부는, 러시아 우위의 통합을 전제하는 푸틴 정부 이후 논의를 중지하였다. 더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 이후, 서방의 제재 때문에 러시아 자체의 경제도 유가 하락으로 악화된 상태에서 언제까지 러시아가 벨라루스에게 경제적 특혜를 제공할지는 불분명하다.
기본적으로 푸틴 정부와 친밀한 관계에 있던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의 크림 점령을 계기로 러시아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2015년 2월 민스크 평화회담을 중재하는 등 서방과 점차 가까워지게 되었다. 2010년대 들어 루카셴코는 국무회의 및 국제회담과 같은 공식 석상에서 러시아어가 아닌 벨라루스어를 사용하는 등 벨라루스의 민족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문화 통치 전략을 행하고 있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2010년 무렵에 루카셴코의 치부를 언론을 통해 폭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루카셴코가 점점 러시아에 반대하고 서방과의 우호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경우, 러시아가 직접 벨라루스의 정치에 개입하여 보다 더 친러시아적인 인물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양중모 대사는 벨라루스는 외부의 영향에 대항하여 벨라루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종족민족주의’의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만, 민족의식이 애초부터 약했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러시아와 서방을 줄타기하는 방식으로 ‘트랜스내셔널’한 정체성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루카셴코 정권 반대 세력에 대한 더 구체적인 정보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강연자는 반대운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들은 서로 집결하지 못해 의미있는 정치세력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답했다. 벨라루스의 반체제 인사들 대부분은 리투아니아 등 외지에서 활동하고 있고, 서방도 우크라이나와 달리 벨라루스의 정치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공기업에서 비롯되고, 일자리의 십분의 일이 경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들의 생활 전반이 국가와 밀착해 있다는 사실 또한 정권의 입장에서 유리한 점이다.
언어학과 학생은 벨라루스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서 지금 유소년층에 얼마나 벨라루스어가 교육을 통해 전달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양중모 대사는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벨라루스어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 벨라루스에서는 식자층일수록 벨라루스어를 쓰지 않는 추세라서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는 러시아어로 말한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이며, 벨라루스어는 농촌, 서부, 가톨릭교도 일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벨라루스라는 나라의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일목요연하고 체계적인 소개를 통해 본 강연회에 참석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을 제공했던 양 대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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