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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Russian Came to Be the Way It Is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정하경 교수

정하경 교수
필자는 역사언어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러시아어 발달사를 배우는 학부생들에게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교과서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심이 많다. 기존 교과서들 중 어떤 것들은 상당히 전문적이고 함축적이어서 어느 정도 언어학적 지식을 구비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적절한 반면, 또 어떤 것들은 너무 간략하여 구체적인 언어변화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015년 출간된 Tore Nesset 교수의 저서 How Russian Came to Be the Way It Is는 결코 얄팍하지 않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학부생들 수준에서 적정한 난이도와 범위를 지닌다. 고대러시아어의 언어적 변화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역사, 문화적 맥락을 통합적으로 소개하는 교과서로서, 이 책은 아직 다양한 언어학적 개념과 이론을 잘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부담없이 러시아어의 역사를 접하면서 언어변화의 실례와 원리를 소화할 수 있게끔 돕는 길잡이이다.
이 책은 17세기까지의 러시아어 발달사를 다룬다. 슬라브어 전반(혹은 동, 서, 남슬라브어의 대표적 언어들)에 대해 논의하는 Schenker(The Dawn of Slavic: An Introduction to Slavic Philology,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95)나 Townsend & Janda(Common and Comparative Slavic: Phonology and Inflection, Columbus, Ohio: Slavica Publishers, 1996) 등과 달리 고대러시아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고대남슬라브어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러시아어의 일부로 존재해 온 고대교회슬라브어 또한 비교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논의에 포함시키고 있다.
책의 구성을 보자. 먼저 간략한 서론 이후 동종 교과서들의 통상적 방식을 따라 루시와 고대러시아어의 역사 이야기가 전개된다(1장). 역사언어학, 문헌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텍스트들이 제시되고(2장), 그 다음에는 러시아어사 연구에 필요한 역사언어학 개념과 원리를 소개하는 방법론 챕터가 나온다(3장). 필자는 이 방법론 챕터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통상 강의자에 의해 학생들에게 부수적으로 전달되거나 관련 논문들을 읽어야만 알 수 있는 언어변화 원리(상대적 순차, 재분석, 문법화, 차용 등)를 책 내용에 포함시킴으로써, 독자들이 특정한 언어변화가 왜 일어난 것인지, 데이터가 어떻게 분석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를 갖추게끔 한다.
3장 방법론 챕터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공통슬라브어에서 고대러시아어로 이어지는 언어변화들이 기술된다. 음운론을 가장 먼저 다루는 기존 교과서들과 달리, 이 책에서는 형태론(4-8장)이 가장 먼저 나오고 통사론(9장), 음운론(10-13장)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다른 교과서들과 구별되는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노브고로드 자작나무 문서에 반영된 고대 노브고로드 방언의 특질에 독립된 한 챕터를 할애하여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14장). 러시아어 역사언어학에서 자작나무 문서와 고대 노브고로드 방언이 차지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과서에서 러시아어 방언에 대한 간략한 언급 외에 따로 자세히 다루어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한편, 책의 말미에는 다양한 문법범주의 형태론 표와 고대교회슬라브어와 고대러시아어의 주요 차이를 정리한 표, 주요 소리변화의 상대적 순차 표, 그리고 텍스트 분석 샘플이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부록은 학생들의 실질적 필요에 부응하는 유용한 자료라고 하겠다.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배려는 각 챕터마다 마련된 권장독서(suggested reading) 목록에서도 드러난다. 각 주제별로 주요 논저를 몇 가지씩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이 관련주제에 대해 더 깊이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기존 교과서들에 비해 주제별, 분야별로 더 일목요연한 구성과 편집을 보이고 있으며, 자세한 인덱스와 관련연구 목록을 제공하는 등 실용적 측면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언어변화의 평면적 기술에 머물지 않고 그에 대한 학계의 다양한 분석과 상반된 견해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흥미와 비판적 사고를 제고한다. 가령, 연구개음의 전모음 앞 연음화의 동인에 대한 분석을 소개한다든지, 구개음화 순서에 대한 상반된 주장들을 비교하는 등, 흥미로운 분석상 문제들을 다룸으로써 단순한 팩트의 나열을 넘어 학생들이 “왜?” 또는 “어떻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책에서는 모스크바 시대 이전까지의 동슬라브 언어상황에 대해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오던 ‘Old East Slavic’이나 ‘Old Russian’과 같은 용어 대신에 ‘Old Rusi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저자가 미국 특정 학계의 전통을 존중하고 있으며 기술적 측면에서 용어의 정확성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저자 : Tore Nesset
  • 출간년도 : 2015.09.17
  • 출판사 : Slavica Publishers
  • 쪽수: 361쪽
  • ISBN 9780893574437
  • (089357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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