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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러시아문학 작품의 국내 번역현황에 대한 단상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박종소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박종소 교수
올해 지난 3월의 일이다. 한동안 모 일간지에 우리국민의 연간 독서량을 조사하고, 해외 몇몇 국가와 비교분석하는 기획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우리국민의 35%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회원국 가운데 1인당 책읽기 시간이 우리가 가장 짧으며,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읽기능력은 세계최고 수준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떨어져 55세 이후에는 최하위 권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조차도 교과서와 참고서를 제외한 독서량의 경우, 38.5%의 학생들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기사의 주장의 요점은 독서를 하지 않는 국가는 글로벌 경쟁력, 경제적 혁신성, 글로벌 기업가 정신 지수 등, 즉, 국가경쟁력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래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독서습관을 키우고 독서율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서를 많이 한 아이가 직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어른이 됐을 때 성공할 확률이 높다”라는 이 기사의 분석과 진단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아이의 성공과 국가의 부(富)의 측면 외에도 한 개인의 삶에서 독서가 ‘삶의 질적 행복 추구’와 얼마나 긴밀히 상관되는지를 밝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책을 읽는 행위는 아이들의 지능향상을 가져오고, 기업가 정신을 키우는 것과 연동되겠지만, 결국 이 독서행위는 삶의 궁극적 목표인 ‘행복’과 밀접히 관련되기 때문이다. 곧 독서는 타인과 세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삶의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만든다. 행복이란 개인이 자신의 고유한 삶의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세계와 대면하여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고, 독서는 이 행복을 얻기 위한 너무도 중요한 필수요건이 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러시아문학을 강의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일간지 기사와는 달리, 특히 ‘교양 교과목’으로서 러시아문학 작품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강의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대학생들이 전공과 취직을 위한 준비 때문에 실제로 독서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지 못하지만, 90년대 이후로도 독서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1000쪽이 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전쟁과 평화』 등을 읽겠다고 수강정원 넘게 교양교과목을 신청하는 이공계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만나면서, 졸업요건으로서의 학점이수가 아닌 삶과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와 성찰을 시도하는 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할지 마음이 사뭇 진지하게 된다.
결국, 많은 젊은이들이 삶에 대한 사유와 성찰로서 독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제반 여건의 부족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문제점들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느끼는 한 가지 단상을 적어본다. 다름 아닌 러시아문학의 번역 현황이다.
1990~2015 출간 번역서적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5년간(1990년 한ㆍ러 수교-2015년 12월말) 번역된 러시아문학 작품 수는 총 995종에 달한다. 적잖은 양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위기에 처해 IMF의 지원을 받았던 1997~98년에서 2000년대 초반을 제외하면 매년 평균 40종~50종 가까이 출판되었다.
러시아문학의 번역 현황(한러 수교 이후 25년:1990.11~2015.12)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에 출판되어 이미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19세기 러시아 문학작품들이 반복해서 출판되고 있다.
이러한 특정 시기, 특정 작가들로 편향된 출판은 자칫 러시아 문학에 대한 고정된 상, 혹은 편향된 상을 형성할 우려가 있다. 국내 출판시장의 이윤추구가 그 주된 이유겠으나, 독자들에게 여러 작가의 우수한 작품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고 독자들의 독서 흥미를 고취할 때 독서의 대중화가 가능하고, 궁극적으로 출판시장도 확장 발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러시아의 다양한 참된 면모를 우리 국민에게 소개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의 러시아문학 번역 소개가 권종 수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Folio, 독일의 Fisher, 영미권의 Penguin Books,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와 같은 세계문학전집을 발간하는 세계 주요 출판사들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우리의 시선을 멀리 높게 향할 때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 못지않은, 오히려 선도할 수 있는 세계문학, 세계고전에 관한 우리의 독자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기준을 논의하고 확립해보자. 그를 통해 러시아 문학과 문화의 뛰어난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번역 소개하여 우리국민의 독서 의욕을 고취하는 데 이바지해 보자. 그것이 곧 우리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을 누리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