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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Russian Came to Be the Way It Is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변현태 교수

정하경 교수
총 3권의 논문모음집 『형식적 방법: 러시아 모더니즘 논문모음집(Формальный метод: антология русского модернизма)』의 출판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각각 체계(Системы, 1권), 질료(Материалы, 2권), 테크놀로지(Технологии, 3권)의 부제를 달고 있는 논문모음집은 우리에게 형식주의와 아방가르드로 알려진 대표적인 이론가들과 예술가들의 1910-30년대의 논문을 재수록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논문들은 대개 2-30년대 소비에트 잡지를 구축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령 http://www.ruthenia.ru/sovlit/j_iss026.html)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해당 시기에 관심이 있는 우리 같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고맙다.
각 권마다 다섯 명의 이론가와 예술가들의 논문들을 재수록하고 있으며, 각 예술가들의 글에 대한 해제 성격의 논문들이 각 절 앞에 배치되어 있어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해제들은 어문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미술연구자 등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에 의해 쓰였으며, 해당 이론가나 예술가의 글들에 대한 서지학적인 해제와 주석이라는 점에서도 유용하지만 형식주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최근의 연구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가령 2권에서 스테파노바(В. Степанова)에 대한 해제를 쓰고 있는 쿠르차노바(Н. Курчанова)는 데리다의 ‘파레르곤(parergon)’과 같은 개념을 빌려,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아방가르드의 개념인 팍투라(Фактура)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파레르곤’이란 그리스어로 작품을 뜻하는 에르곤에 ‘주변, 반대’ 등의 뜻을 가진 ‘파르/파라’를 결합시켜 데리다가 만든 신조어로, 작품 속에 있지 않지만 작품을 발생시키는 어떤 것이다. 가령 그림의 액자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팍투라’란 작품의 질료와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일단은 미술 작품의 표면의 질을 지칭하지만 작품에 깃들 어떤 정신적인 요소와 결부된다. 가령 1910-20년대에 러시아에서 ‘팍투라’와 관련해서 많이 언급되는 것은 성화를 만드는 ‘물감’ 같은 질료다).
이 논문모음집에는 슈클롭스키나 에이헨바움, 야콥슨과 같이 기존에 제법 논문이 출판되었던 연구자들의 글 외에도 간(Ган), 스테파노바(Степанова), 트레티야코프(Третьяков), 브릭(Брик) 등의 글과 같이 2-30년대의 해당 잡지를 뒤져봐야 구할 수 있는 글이나 심지어 그 당시 외국에서 발표했던 글의 러시아어 번역본까지 수록되어 있다. 구하기 힘든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들의 수많은 글들 중에서 해당 글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거쳐 만들어졌을 이 책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형식주의·아방가르드 연구를 위한 정전을 만들어나갈, 일종의 1차적인 서지학적 작업을 완료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미 소비에트 후기(7-80년대)에 시작된 형식주의·아방가르드 연구는 포스트 소비에트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다가 최근에 폭발적으로 학적 유행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실 형식주의·아방가르드 연구 자체가 약간은 금기시되었던 소비에트 시절을 생각해보면 형식주의·아방가르드 연구는 러시아에서보다 오히려 서구권에서 더 깊이 이루어졌다는 인상이 있다. 전체 책의 발문에서 총 편집자인 우샤킨(С. Ушакин)이 지적하고 있듯이 형식주의·아방가르드 연구의 고전은 이를테면 얼리치의 『러시아 형식주의』, 뢰베의 『러시아 형식주의』, 제임슨의 『언어의 감옥』 같은 서구 학자들의 저작들인 것이다(필자라면 여기에 뷔르거의 『아방가르드의 이론』을 포함시킬 것이다). 다만 최근 쏟아져 나온다는 인상을 주는 서구의 다양한 경향의 아방가르드 연구가 정작 어문학(филология)의 근본인 서지학(текстология)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의 출판이 갖는 의미는 더 클 것이다. 서구에서 그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던 2-30년대 러시아 형식주의·아방가르드의 1차 자료에 대한 번역도 이 책의 출판과 함께 더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의미는 서지학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제목(‘형식적 방법’)과 부제(‘러시아 모더니즘의 논문모음집’)가 웅변하고 있듯이 이 책은 2-30년대 러시아 형식주의·아방가르드에 대한 일정한 재해석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우선 ‘러시아 형식주의’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문예학 혹은 문학 이론에, 그들이 스스로를 칭하던 이름, 즉 ‘형식적 방법’을 되돌려주고자 하는 시도이자 이 ‘형식적 방법’을 미학적, 철학적 패러다임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주지하듯이 ‘형식주의’라는 이름은 그 당시 형식주의 vs. 맑스주의의 논쟁의 구도 속에서 맑스주의 진영의 비평가들이 경멸적으로 붙인 것으로 이 논쟁과정에서 형식주의자 에이헨바움은 「형식적 방법의 이론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자신들을 ‘형식적 방법의 이론’으로 명명한 바 있다.
한편 이러한 확장의 시도는 일반적으로 형식주의와 구분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이론을 ‘형식적 방법’ 속으로 포함시키는 시도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일반적으로 절대주의(말레비치), 구축주의(로드첸코, 간, 스테파노바), 생산주의(브릭, 트레티야코프)로 명명되는 이론가와 예술가들의 글들, 더 나아가 영화(에이젠슈테인, 베르토프), 연극(메이에르홀드) 분야의 글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정도면 ‘형식적 방법’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책 전체에 대한 해제의 글, 「날아오르지 못한 공상의 비행기들(не взлетевшие самолеты мечты)」(이 표현 자체는 슈클롭스키의 회고에서 따온 것이다)에서 책의 총 편집자 우샤킨은 이러한 시도를 보여준다. 그는 이 모든 이론가와 예술가들에게서 무엇보다도 예술 형식에 대한 관심을 본다. 그리고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이 예술 형식에 대한 관심은 무엇보다도 ‘모더니티/모더니즘’ 개념에 대한 고찰로 압축된다.
요컨대 우샤킨에 따르면 형식주의, 아방가르드로 일단 통칭할 수 있는 2-30년대 러시아의 예술이론은 서구의 모더니티와 그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모더니즘 예술이론의 러시아식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샤킨의 접근법은 아마도 최근 영미문학 이론에서 관찰되는, 러시아 형식주의를 포함한 형식주의 미학 일반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인 접근의 시도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형식적 방법’의 개념을 확장하고자 하는 이 작업은 필연적으로 ‘모더니티/모더니즘’이라는 커다란 범주의 재해석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정황이 어찌되었건 이 대담한 기획의 이론적인 귀결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필자는 우샤킨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방향, 즉 형식주의로 아방가르드를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아방가르드의 예술이론으로 형식주의를 포섭할 수 있고 또 포섭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데, 입장의 차이와 별개로 이 책은 이러한 대담한 기획의 향방이 2-30년대 러시아 예술이론 연구의 근본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만들어 준다. 지난 시기 예술이론에 대한 연구에서는 일단 새로운 해석방법론만큼이나 어문학 연구의 기본인 서지학에 충실해야한다고 믿는 까닭이며 우샤킨이 편집한 이 책이야말로 그 출발점에 충실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 편자 : Сергей Ушакин
    출간년도 : 2016
    출판사 : Кабинетный ученый
    쪽수: 960쪽
    ISBN 9785752529955
    (5752529956)
  • 편자 : Сергей Ушакин
    출간년도 : 2016
    출판사 : Кабинетный ученый
    쪽수: 936쪽
    ISBN 9785752529962
    (5752529964)
  • 편자 : Сергей Ушакин
    출간년도 : 2016
    출판사 : Кабинетный ученый
    쪽수: 912쪽
    ISBN 9785752529979
    (5752529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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