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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러시아문학 작품의 국내 번역현황에 대한 단상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정하경 교수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필자는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여름까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슬라브・동유럽・유라시아학 연구소(Institute of Slavic, East European, and Eurasian Studies)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년을 보냈다. 2000년대 초 유학시절 미국 대학의 완전한 구성원으로서 미국 슬라브어문학계를 안에서 바라보았던 것과 한국 대학에 재직하면서 한시적으로 미국 대학 연구소에 적을 두고 밖에서 그들을 보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경험이었다. 나의 관점만큼이나 미국 슬라브학계 자체도 십수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1년 동안 슬라브 연구소와 슬라브어문학과의 교수들,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미국 슬라브학계에 대해 느꼈던 점을 간단히 술회하고자 한다.
미국 슬라브학계에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변화는 사람들이었다. 일단 내가 유학시절 배웠거나 같이 연구했던 학자들의 상당수가 은퇴하거나 은퇴 직전이었는데, 이들을 대체할 만한 미국인 학문후속세대가 거의 육성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연한 것이 현재 은퇴하고 있는 교수 세대는 냉전시대와 그 직후 슬라브학이 가장 호황이었던 시기에 학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기에 양적,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인력들이었고 국내외 연구 활동 역시 아주 활발했다. 소련이 해체된 후에는 탈소비에트라는 주제가 세계적으로 잠시 주목받았으나(필자의 유학시절만 해도 이것이 매우 ‘핫한’ 주제였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인 연구인력의 유입을 자극하는 키워드가 되지 못하고 있으며 딱히 이에 비견할 만한 다른 국면도 부재한 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인의 전반적인 관점 변화 또한 미국 슬라브학계에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에 대응하는 유일한 초강대국이 아닐 뿐 아니라, 그동안 상당한 연구와 소개가 이미 진행된 바 있기에 러시아 문화, 사회에 대한 미국 내 각계의 관심도 별로 높지 않다. 더욱이, 트럼프 시대가 개막되면서 미국 슬라브학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특히나 우려를 표하고 있다. 버클리대 슬라브어문학과의 한 교수는 미국의 이익만을 최우선하는 정치적 경향이 슬라브와 같은, 현재 미국의 정치경제적 이익과 그다지 직결되지 않는 지역의 연구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을 염려했다.
미국인 연구자들의 감소로 인해 이전보다 침체되었음에도 슬라브학이 아직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지식, 역량과 방대한 자료에 힘입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외 지역의 슬라브학 연구자들이 발전된 연구시스템 하에서 미국 학자들과 협업을 하기 위해 미국 대학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수혈’이 이공계만큼이나 슬라브학계 또한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슬라브권 이외 지역에서 슬라브학의 중심이 미국에 집중되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실상 아시아와 유럽으로 분산되는 느낌이다. 필자가 버클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중국, 남미, 유럽의 학자, 학생들이 끊임없이 슬라브 연구소를 방문했으며 이들이 참가하는 워크샵, 강연들이 연중 내내 개최되었다. 학문의 지역적, 국가적 장벽은 점점 낮아지고 각 지역 특유의 연구경향이라는 것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임을 고려한다면, 외부로부터의 우수 연구 인력의 유치와 교류는 단지 슬라브학뿐 아니라 대부분의 인문학 영역이 나아가야 할 활로가 아닌가 싶다.
미국 슬라브학계에서 아직까지 변함없어 보였던 것은 학문적 활동의 다양성과 역동성, 진정성이었다. 버클리 같은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에서 연구의 질적 우수성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공히 인정되고 있다. 유학 시절, 한국 대학과는 차원이 다른, 대학원생들에 대한 풍부한 물리적 지원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한 지원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적 시도와 그를 위한 필드워크, 해외 학자들과의 협업을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학문 발전의 근간이 된다. 지금은 한국 대학의 지원이 늘어나기도 했고 미국 대학들의 재정이 확연히 줄어들면서 그 간격이 어느 정도 좁혀지긴 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단지 돈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원생이 학업을 프로페셔널하게 수행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한 물리적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학교, 학생, 사회 전반에 아직도 널리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교수, 연구자들의 경우 학문적 수월성이라는 가치와 다른 가치들의 상대적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 또한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