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
  • 서평

서평

결혼, 러시아 민중문화의 일상과 의례를 찾아서
— 김상현, 「러시아의 전통혼례문화와 민속」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 최 진 석

최진석
결혼이 갖는 문화적 의미는 다층적이다. 우선 그것은 ‘개인’ 간의 인격적 관계가 제도적으로 승인받는 형식이고, ‘가문’으로 대표되는 두 집단 간의 교환행위이며, ‘가족’이라는 친족단위이자 사회적 단위가 형성되는 사건이다. 결혼을 통해 출산과 양육이라는 원초적 생활패턴은 하나의 상징적 규범 속에 안착하며, 규범화된 재생산 과정을 시작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혼인에 관련된 의례와 규칙, 절차들이 까다롭게 발전한 것은, 그것이 개인으로부터 집단으로, 가족으로부터 사회로, 친족으로부터 민족(사회·국가)으로 이어지는 결절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학적·인류학적 연구들은 꽤 찾아볼 수 있으나, 러시아처럼 특수한 사례에 대해서는 국내에 잘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의 러시아학은 오랫동안 언어와 문학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고, 최근 들어 문화와 사회·정치·경제에 대한 관심도 확장되는 추세이다. 동북아의 약소국으로서 냉전의 영향을 받아 연구의 폭과 깊이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너나없이 그 ‘제약’의 중대 조건으로 꼽는 것은 언어와 문화의 특수성이라 할 것이다. 서유럽과는 이질적인 문자 및 종교체계, 세계관 등은 통상의 접근방법으로 러시아를 다룰 수 없게 만들었고, 이는 러시아학의 범위와 한계를 규정짓는 본질적 요소로 작용했다. 아마도 민속에 대한 연구가 드물었던 이유가 여기있지 않을까? 단순히 문헌학적 연구로는 충족될 수 없는 현지조사와 분석, 자료의 새로운 발굴과 해석이 가장 지난한 분과가 바로 민속학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김상현 교수의 신간 『러시아의 전통혼례문화와 민속』은 참신하다. 그간 몇몇 연구자들의 조사와 보고가 없진 않았지만, 주로 서구의 연구에 크게 기대어 있었고 학술논문의 형태로 나왔기에 한국의 독서대중에게 그 실상을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발간으로 인해 러시아 문화의 ‘속살’이 어느 정도 대중적인 공감과 이해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을 듯하다.
결혼이 갖는 문화적 의미는 그 내용보다는 형식이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근대적 연애관과 달리, 결혼은 인류사의 시원에서부터 사회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의례이자 규범으로서 정착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혼례문화 역시 이 점에서 볼 때 다른 서구문화 및 동양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지역적인 특색, 개별 민족문화에 있어서 발전의 상이한 형태를 포착하고 이해하는 것이 긴요한 일인데, 김상현 교수의 신간은 이에 대한 종합적이고 흥미로운 보고서가 된다. 가령 러시아의 혼인문화에 대한 그의 관찰과 분석은 비단 의례의 형식적 틀거리들을 소상하게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갖는 사회사적 유래와 의미, 한계 등을 짚어내는 데 소흘하지 않다. 부족사회에서 결혼이 갖는 공동체적 의미는 서구화 이후 귀족의 서구식 의례와 어떻게 맞부딪히고 타협해 갔는가, 어떤 방식의 ‘중도적’ 결합을 형성했는가, 또 그것은 러시아 민중의 정신 및 물질생활에서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고, 소비에트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잔존해 있는가를 세심하게 탐구하는 모습은 이 책이 갖는 학술적 강점이다. 혼인의례라는 외적 포장에 흥미를 갖고 이 책을 펼쳐든 사람은 곧 그것이 러시아 문화의 정신성과 물질주의가 만나고 결합한 과정에 대한 연구이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저자 : 김상현 출간년도: 2014
    출판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456쪽
    ISBN 9791155500903
고백하건데 나 개인적으로 이 책에 반해버린 이유는 사실 형식적이고 외적이다. 전문연구가가 내놓는 책에서 누락되기 쉬운 각종 사진자료와 생활통계, 시시콜콜한 시각적 이미지들은 이 책을 누구나 ‘탐내도록’ 자극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저자 본인이 직접 현지에 나가서 채록하고 촬영한 자료들에 바탕한 것으로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장점을 이루는 것이라 더욱 소중하다. 저자가 민속의상을 직접 착용하고 찍은 사진들을 본다면 은근한 미소가 번져나오는 것을 금치 못할 것이다. 또한 「도모스트로이」의 혼례규정을 번역해 부록으로 실은 것도 큰 미덕이라 할 만하다. 그저 이러저러한 옛 문헌이 있었다, 정도가 아니라 그 문헌의 실체를 번역해서 공개함으로써 이 책이 갖는 학술적 특장이 생동감을 얻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 대해 ‘자랑삼아’ 이야기할 것은 많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 그 자랑거리들을 직접 챙겨서 읽어볼 것을 ‘강추’하는 바다. 러시아 문화의 진면목, 그 속내에 관해 궁금해 하던 전문가들 및 일반독자들에게 이 책은 두고두고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