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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조각들을 찾아

노어노문학과 13학번 김애니

노어노문학과 1, 2학년 학부생 8명은 정하경 교수님의 인솔 하에 지난 2월 발칸반도로 해외문명탐방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팀의 탐방 주제는 “유고슬라비아 조각 찾기”였다. 제목이 어쩐지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우리 팀이 탐방을 통해 성취하고자 했던 것은 다음 세 가지와 같았다. 첫째,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혼재된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을 탐방함으로써 이 지역이 대립과 분열의 역사를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해보는 것. 둘째, 이 지역에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문화적, 종교적 조각들을 맞춰보는 것. 셋째, 공존을 향한 길을 한참동안 걸어온 구 유고국가들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 ‘유고슬라비아 연방’, 이 이름은 내겐 한마디로 낯선 것이었다. 신화 속 상상의 동물처럼 실체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또 그 이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이상 현재를 살고 있는 나와는 무관한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해체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과거의 역사’는 이번 해외문명탐방을 통해 ‘현재의 나’에게 현재적이고 지속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다양한 문화의 혼재는 문화적 풍요를 담보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회에 분열과 대립을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발칸의 화약고’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보여주듯,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존재했던 발칸반도에서는, 문화가 극히 다종적인만큼 그로 인한 분열과 대립도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연방이었던 유고슬라비아는 내전을 겪고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등 8개의 공화국으로 분열되었다. 그 중에서 우리 팀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의 4개 도시를 다녀왔다. 이 도시들은 그야말로 다문화와 다종교의 상징이며, 이로 인한 갈등을 보여주는 역사적 유산이었다. 또 서로 다른 문화들이 어울려 공존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낸 곳이기도 했다.
우리 팀은 7박 8일이라는 짧지 않은 일정에서 많은 것을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였다. 사라예보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정교회, 유대교, 이렇게 네 개의 종교가 존재했고, 또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예보에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갔고, 결국에 이는 내전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찾은 오늘날의 사라예보에는 네 개의 종교사원들이 평화롭게 서로 마주보며 서 있었다. 종교적 이질성으로 인해 그렇게 반목했고 또 수난의 역사를 겪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네 종교 사원들이 5분 남짓의 거리에 한 데 서 있는 모습이 왠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사라예보 곳곳에는 내전 당시의 폭격당한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옛 모습 그대로 위태롭게 서있는 건물들부터, 군데군데 엿보이는 총탄의 흔적들과 저격수의 거리까지 내전의 흔적들을 우리는 여기저기서 마주쳤다. 이렇게 어둡고 절망적인 기억과 끔찍한 상처들을 보여주는 모습들과 처음 마주했을 때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방치’가 아니라 기억의 ‘보존’이었다는 것을 깨닫자,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의 상처를 예방하려는 이 땅의 성숙함이 느껴졌다.
오늘날 보스니아의 국립학교에서는 가톨릭과 정교회, 무슬림 학생들이 한 반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내전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스니아는 무슬림과 가톨릭, 정교회를 믿는 각각의 대통령이 8개월씩 돌아가며 통치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던 과거 보스니아의 역사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내었다. 그러나 그만큼 오늘날의 보스니아가 ‘희생’ 위에 ‘희망’을 쌓아올려 얻은 평화란 그 어떤 평화보다도 훨씬 공고하고 건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적 다종성과 그로 인한 갈등과 혼란이라는 키워드는 생각해봄직한 문제이다. 그러나 특히 통일한국을 대비해야 하고 또 국가 간의 장벽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이다. 유고슬라비아의 역사가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가치체계에 근거하고 있을 지라도, 이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비극의 기억에서 평화의 장으로 내딛고 있는지, 어떻게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어울리고 또 어우르며 공존하고 있는지, 주어진 과제를 이들이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를 살펴본 경험은 우리를 가치 있는 고민 속에 놓이게 해주었다.
우리 팀의 여정은 즐거운 이야기가 흘러넘치고, 맛있는 음식들이 풍성하며,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들이 펼쳐지고, 좋아하는 동행자들과 함께여서 정말 좋기만 한 여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점은 ‘의미’를 찾는 여정이었기에 정말로 의미있는 여정이 되었다는 점이다. 해외문명탐방을 준비하는 것이 늘 순조로이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세계사 수업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만 남아있는 발칸반도에 대해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주제를 고민하던 것, 고속버스 예매도 어려워하는 내가 손을 덜덜 떨며 비행기 표를 끊던 것, 사라예보에서 ‘분쟁’이란 단어를 피부로 느끼고 모스타르에서 공존과 인간, 우리 자신에 대해 각자의 결론을 내려 본 것, 난방이 잘 안 되는 숙소에서 난로 대신 옆 사람을 꼭 끌어안고 자던 밤들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의미 없는 순간이란 없었다. 이번 겨울방학을 ‘의미’로 채워준 팀원들과 정하경 교수님, 해외문명탐방 프로그램을 마련해 준 학교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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