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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멜료프(А. Шмелёв), 슈멜료바(Е. Шмелёва) 교수 초청강연회

서울대 러시아연구소는 노어노문학과와 공동주최로 2015년 11월 19일과 24일 양일간 러시아연구소 자료실에서 알렉세이 슈멜료프(Алексей Шмелёв, 모스크바국립사범대학), 엘레나 슈멜료바(Елена Шмелёва, 러시아국립학술아카데미) 교수를 모시고 초청강연회를 개최하였다.

19일의 첫 순서로 알렉세이 슈멜료프 교수는 “러시아어 상 체계의 핵심으로서의 상적 상관성(Aspectual Correlation as the Core of Russian Aspectual System)”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러시아어의 상은 체계화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동사 A'는 동사 A의 완료상이다’와 같은 사전식의 상적 체계 서술이 러시아인의 직관 및 연구와 완전히 부합하지 않음을 통해 드러난다. 이에 강연자는 러시아어 사용 실태 연구를 통하여, 러시아어의 상 체계의 핵심으로 상적 상관성을 제안했다. 이를 위하여 우선적으로 Z. Vendler에 의해 구분된 상태(state), 활동(activity), 완성(accomplishment), 달성(achievement)을 재구분하여, 동사를 크게 정적인(static)것과 동적인(dynamic)것으로 나누고, 후자를 다시 과정(processes/activities)과 사건(events/acts)으로 나눴다. 슈멜료프 교수는 이와 같이 재구분된 기준 하에서 러시아어의 불완료상은 정적인 것 또는 과정 혹은 사건 모두를 표현할 수 있으며, 반면에 완료상은 사건만을 표현한다고 파악했다. 이러한 구분 아래에서는 오직 ‘사건’의 경우에만 완료상과 불완료상의 사용이 중첩되는데, 강연자는 이러한 중첩이 기존의 불완료상과 완료상 동사의 쌍이 상관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이와 관련하여 슈멜료프 교수는 하나의 완료상 동사가 의미적으로 다수의 불완료상 동사와 연관될 때, 문법적으로 반드시 불완료상을 사용해야하는 맥락, 예컨대 ‘역사적 현재’나 ‘현재시제’의 경우에 러시아어 화자가 불완료상 동사를 선택하는 세 가지 전략의 우선순위를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어서 엘레나 슈멜료바 교수는 “러시아어의 새로운 동향(New Trends in Russian)”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소연방의 몰락은 소련을 구성하고 있던 많은 이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언어적 측면에서도 동일하여 고르바초프의 해빙과 개방 시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어는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언어변화에 대한 연구 역시 이러한 정치적 이해와 동떨어져 이루어질 수 없다. 강연자는 이러한 다양한 변화를 몇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으며 이를 두 시기(1985~2000년, 2000~2015년)로 나누어 소개했다. 첫 번째 시기인 1985~2000년에는 다양한 새로운 요소들의 등장과, 기존 요소의 도태와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전(前)소비에트 어휘의 복귀로,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사전에만 존재하던 어휘들, 가령 ‘자선(благотворительность)’이나 ‘은행(банк)’, ‘대통령(президент)’과 같은 전소비에트 시기에 존재하던 어휘들이 재사용되었다. 둘째는 소비에트시기에 사용되던 어휘들의 도태이다. 당과 관련된 어휘들은 사용빈도가 급감하게 되었고,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지녔던 어휘들이 탈이데올로기화되어 새로운 의미와 뉘앙스를 갖게 되었다. 또한 소비에트시기에는 교정과 검열로 인해 나타나지 않던 비규범적 언어사용이 대두되었다. 셋째는 새로운 어휘들의 도입으로, 새로 도입된 신개념들에 대한 어휘들이 새로이 등장하였다. 또한 기존에는 억압되었던 속어와 비공식적 구어 표현이 문학과 언론 등에서 대두되었으며, 다양한 어휘 차용 현상이 발생하였고, 이는 특히 경제나 기술, 언론, 패션 등과 같은 특정 영역에서 두드러졌다. 또한 기존에 이미 차용어로 존재하던 ‘аксессуары’가 19세기의 ‘세부사항’의 의미에서 20세기에는 ‘악세사리’의 의미로 2차 차용되거나, ‘пиар(PR)’에서 ‘пирить’, ‘пиарщик’과 같은 어휘를 만들어내는 조어현상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러시아어 어휘의 새로운 의미 습득 및 의미 변화는 러시아인의 세계인식과도 연결되어 있어, 러시아인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다.
두 번째 시기라 할 수 있는 2000~2015년에는 앞선 시기에서 일어난 변화들이 안정화되고 정착화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주요한 경향으로는 신기술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어휘와 표현의 등장, 조어적 측면에서 차용어휘의 러시아어화, 외국어를 이용한 조어현상, 그리고 혼성(blending) 현상과 새로운 언어의 이데올로기화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일어났던 언어 현상 역시 다양한 측면에서 러시아인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강연자는 이러한 언어에 대한 관찰과 이해를 통해 러시아인과 러시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평가하였다.

24일의 첫 강연, “언어를 통한 러시아 문화의 이해(Understanding the Russian Culture through Language)”에서 슈멜료프 교수는 러시아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정 어휘나 표현을 러시아어 화자들이 지닌 세계관의 투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피력하였다. 또한 언어권에 따라 유사한 어휘와 개념이 서로 다른 화용적 특성을 보이는 것 역시 해당 언어 화자들의 세계관의 차이임을 예시하였다. 예를 들어, 러시아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성적 사고와 감성적 표현을 각각 몸의 ‘뇌’와 ‘심장’과 연관시키기 때문에 ‘머리(голова)’는 생각이나 암기에, ‘심장(сердце)’은 사랑과 같은 감정 표현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신체의 일부를 특정 사고영역과 연관시키는 것은 언어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서, 예컨대 중국어 화자들은 러시아인처럼 이성적 사고와 감성적 표현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두 표현 모두에 ‘심장’을 사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들은 단순한 어휘 대 어휘의 번역으로는 그 묘미를 살릴 수 없다. 또 다른 예로 ‘모험’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함축할 수 있는데 현대 영어에서는 긍정적인 의미, 즉, ‘일상에서 벗어난 색다른 경험’이라는 의미가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러시아어에서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경험’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우세하게 쓰이는 것을 다양한 예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어휘에 반영되는 이러한 가치판단적인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러시아 문화에서 ‘성공(успех)’은 삶의 본질적인 가치가 아니었으며 이들은 흔히 ‘서구문화’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 러시아에서는 ‘성공적인(успешный)’이라는 형용사는 ‘사람’을 수식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러시아의 젊은이들 또한 성공을 추구하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기에 ‘성공적인 인물(успешный человек)’이라는 단어 조합이 가능해졌으며, 과거 영어의 ‘businessman, ambitious, career’ 등에서 차용되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던 러시아어 외래어들도 더 이상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이지 않는다. 이상의 예들 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어휘 및 숙어적 표현과 여러 문학 작품의 예와 함께 진행된 본 강연은 많은 참여 학생들의 호기심과 호응을 이끌었다.

이어진 마지막 강연, “러시아 유머의 이해: 배경지식과 언어규칙(Understanding Russian Jokes: Background Knowledge and Linguistic Rules)”에서 슈멜료바 교수는 러시아에서 ‘일화(아넥도트, анекдот)’라 명명되는 유머 장르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과 맥락을 설명하였다. 18~19세기까지 러시아의 아넥도트 장르는 영어의 anecdote와 유사하게 ‘역사적 인물의 실제 사건을 서술’하는 장르로서 주로 과거시제로 서술되어 왔다. 반면, 오늘날의 아넥도트는 일종의 ‘발화-묘사장르’로서 화자가 이야기를 단순히 말로만 구술하는 장르가 아니라 일종의 공연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러시아 아넥도트는 사회적으로 비교적 ‘저급한’ 장르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192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이 장르는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고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다. 소비에트 시절의 아넥도트는 정치 지도자나 당시의 사회, 경제적 문제를 비판하는 반(反)소비에트적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물론 부부관계 등 허구의 인물을 통해 비유적으로 풍자되었으나 6개의 풍자글을 게재한 이유로 작가가 10년간 수용소에 구금되는 등의 사건도 있었다. 21세기에 이르러 아넥도트는 그 자체가 회자되기보다는 이미 모든 러시아 국민이 인지하고 있는 정형화된 과거의 아넥도트 맥락을 바탕으로 새로운 2차 유머가 재생산되기도 한다. 또한 오늘날의 아넥도트는 인터넷 등의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본래 아넥도트가 발화 장르로서 지녔던 억양이나 제스처를 대신하여 보조적으로 대문자나 기타 시각적인 부연설명 장치가 함께 쓰이기도 한다. 슈멜료바 교수는 러시아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여러 아넥도트의 실제 예를 제시하면서 외국인이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배경지식을 함께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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